공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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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11-08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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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수정(雙樹亭)
조선시대(朝鮮時代) 인조(仁祖)가 이괄(李适)의 난(亂)을 피하여 일시 파천 (播遷)한 곳 이다. 비문(碑文)의 내용은 이괄의 반란과 인조가 난을 피하게 된 사실을 쓰고 공산성에 머물렀던 약 10일간의 일도 기록되어 있다 비(碑)는 조선시대 일반적인 양식(樣式)이며, 특히 귀부(龜趺)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비문(碑文)은 인조때 영의정을 지낸 신흠(申欽)이 지은 것이며 글씨는 숙종때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南九萬)…(skip)
진남루(鎭南樓)
공산성은 백제의 웅진시대 도성(都城)이었던 사적(史蹟)으로서 아직도 백제 토성지(土城址)가 남아 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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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루(鎭南樓)
공산성은 백제의 웅진시대 도성(都城)이었던 사적(史蹟)으로서 아직도 백제 토성지(土城址)가 남아 있다
진남루(鎭南樓)는 공산성의 남문(南門)이며 조선시대(朝鮮時代) 에는 삼남(三南)의 관문(關門) 이었다.
진남루(鎭南樓) 공산성은 백제의 웅진시대 도성(都城)이었던 사적(史蹟)으로서 아직도 백제 토성지(土城址)가 남아 있다.
쌍수(雙樹)에 기대어 왕도(王都)를 걱정하던 인조가 평정(平定)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이 쌍수에 토훈대부(通訓大夫)의 영(令)을 내리셨다는 기원가 있다
- 쌍수정(雙樹亭) 사적비[지방culture재 제35호]
이 비(碑)는 조선 인조(仁祖)가 이괄(李适)의 난(亂)을 피하여 이곳 공산성에 머물렀던 일을 새긴 것으로 숙종(肅宗) 34년에 세운 것이다.


